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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담】"오줌 마려워~" - 통역중 생긴 에피소드우리 이야기/내 이야기 2013. 12. 27. 08:00
예전에 일본어 통역할 때 있었던 제 에피소드를 소개하려 합니다. 조금 창피한...^^
얼마전 넬슨 만델라 추모식 때, 엉터리 수화로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은 통역사 이야기가 이슈가 됐는데, 뉴스에 보니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네요.
어떤게 진실인지는 몰라도... 그런 중요한 자리에서 그렇게 큰 실수를 하다니... 있어서는 안될 일이죠.
또, 브라질 코스타 두 사우이페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조추첨'을 생중계한 SBS의 동시통역사 '이슬기'씨는
"플레코 안녕"이라고 직역하거나, "축구공 호나우두"라고 통역하여 웃음을 자아낸 일도 있었죠.
저도 그와 비슷하게 서툰 통역일 중에 생긴 조금 창피한 실수담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오사카에서 지낼 때, 지인 소개로 일본어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답니다.
많이 서툰 일본어였지만, 일손이 필요했고 중요한 자리는 아니었기에 통역일을 하게 되었답니다.
한국 농수산물 협회에서 일본에 수출을 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는데, 한국 농수산업계에 일하시는 업주분들이 오셔서 일본 관계자와의 박람회였습니다.
모르는 농수산물 이름이며 전문 용어들 사이에서 정말 사전 두드리기에 정신이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전자사전을 뒤져도 나오지 않는 단어들...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고생 많이 했답니다. 애독하고 있는 블로거 '장화신은 삐삐'님을 포함한, 모든 통역가분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일본어와 한국어는 비슷한 표현도 많이 있는 반면, 전혀 다른 관용구나 속담 등도 많이 있어서 번역이나 통역일을 할때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핑계아닌 핑계랄까 지난 글에서도 일본어와 한국어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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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산업계에 일하시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다소 직선적으로 말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요, 제가 담당했던 분들도 그랬답니다.
한참 상담을 하던 중에,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신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보통이라면 "죄송합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すみません。ちょっと失礼します。)" 정도로 말씀하시겠지만, 제가 담당하시는 분은
"今日トイレが近いな。ちょっとトイレ行ってきますね。"
이 일본어를 제가 번역을 이렇게 해버렸답니다.
"오늘 오줌이 자주 마렵네, 잠깐 화장실 좀 갔다올께요"
직역하자면, "오늘 화장실을 자주 가네요.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가 되는데요, 그냥 통역도 '화장실 좀 다녀오신대요'라고 했으면 됐는데,
처음 하는 통역일에 좀 긴장도 한 탓에, 그 말을 그대로 전달해야된다는 생각이 앞섰는지...이렇게 번역을 해버렸답니다.
그런 중요한 공석에서 '오줌이 마렵다'고 번역을 하다니... 말하고 나서 얼마나 창피하던지 ㅠㅠ다행히 한국의 업자분께서도 '허허허' 웃으시면서 넘어가주고 분위기 좋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소재가 되었던 적이 있답니다.
※ 'トイレが近い'는 직역하면 '화장실이 가깝다' 이지만, '화장실을 자주 간다' 는 의미의 관용구랍니다.
또 하루는 우리 농산물의 장점에 대해 설명을 하는 통역을 하던 중이었는데,
'○○ 성분이 들어있어 ○○병에 좋으며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 ○○가 전혀 함유되어 있지 않다...'
이런식의 브리핑을 하고 있었는데, 상대방 일본분께서 50대 정도 되는 나이가 좀 있는 여성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私はババだから、そんなの聞いてもよくわからないよ。おいしくて安全なら、それで充分だよ。"
통역을... "나는 할망구라 그런거 들어도 잘 모르겠어, 맛있고 안전하면 충분해!"
할망구라니... 그걸 그대로 직역을 해버렸답니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있어서" 정도로 통역했으면 됐을텐데...ㅠㅠ
순간 듣고 계시던 한국 담당자분도 당황하셔서, "할망구라니...아직 젊으신데요 뭐..."라고 말씀을 하시고, 상대방도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면서
또 분위기 좋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답니다. 역시 여자는 어려보인다는 칭찬에는 약한가봐요 ^^
이건 제 실수는 아니고 같이 계시던 기분 좋아진 한국 업자분의 설레발로 생긴 에피소드인데요, 이야기가 원만하게 이루어져서 결국 계약까지 이어지게 되었답니다.
통역할때는 이럴 때 정말 큰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내가 하는 번역과 통역으로 분위기가 좋아지고, 결과물까지 나왔을 때의 성취감이란...!!
아무튼, 이렇게 정상적으로 거래가 성립되고 두분 다 기분 좋게 계약서에 사인을 하신 뒤에 일본분께서 말씀을 하시더군요.
"契約できて光栄です。とても嬉しいですね。よかったら、あとで一杯しましょう。"
먼저 뒤쪽에 있는 부분의 발음을 들으면 "아토데 잇빠이 시마쇼"가 있는데, 제스쳐를 술을 마시는 동작을 하신 걸 알고
미처 제가 통역을 하기도 전에 업자분께서도 기분 좋아하시며 술 마시는 제스쳐를 취하며
"오~잇빠이 잇빠이! 그래, 그래 기분 좋다. 술 많이 마시자!! 코가 삐뚤어질때까지 마시는거야!"
이렇게 말씀하시며 무척 기분좋아하시더라구요. 뭐 틀린건 아니지만 번역하자면...
"계약이 이뤄져서 영광입니다. 무척 기분 좋네요. 나중에 술이나 한잔 해요"
잇빠이로 발음 나는 동음이의어 일본어인데요, '가득'이라는 의미와 '한잔' 이라는 의미가 있답니다.
여기서 전국민이 알고 있는 일본어 '잇빠이'에 술마시는 동작이 나오니, 업주분께서 아주 기분이 좋으셨나봅니다. 그냥 따로 통역은 안해도 되더라구요.
역시 말이 안통할 때는 마음과 바디랭기쥐로 해결이 되는 것 같아요! ㅎㅎㅎ
박람회는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기분 좋게 마무리 되었고, 저희는 한국의 담당자분들께 각종 한국 특산물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답니다.
인삼, 홍삼, 벌꿀, 막걸리, 각종 과일주, 전복 등등...
일본이라면 정말 딱 시급만 받고 끝났을텐데, 한국분들은 역시 정이 넘치시더라구요.
다들 비싼 특산물인데 상대 일본측 담당자 선물로 넉넉하게 가져오신 것들이 남았다면서 저희에게 수고했다고, 타국에서 고생한다고 나눠주시더라구요.
훈훈한 한국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가끔 이렇게 통역일을 하다보면 크고 작은 실수가 생기기 마련인데,
오히려 실수가 분위기를 좋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첫 통역 경험이었답니다.
'어르신들 잘 계시죠? 그 때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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